'Wicked’, ‘사악함'이 향해 있는 것

2025. 3. 31. 08:44카테고리 없음

위키드(2024)

“엘파바와 정말 잘 아나요?”


영화 <위키드>의 ‘엘파바’는 <오즈의 마법사>(1900)에서 그저 서쪽마녀, 초록마녀로 불렸던 그녀다. 그레고리 맥과이어가 쓴 소설 <위키드: 서쪽마녀의 삶과 시간들>에서 비로소 ‘엘파바’라는 이름을 갖게 되고 그녀의 서사가 세상에 나오게 된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엘파바를 사악한 서쪽마녀라 부르며 두려워하고 경계하게 되었다. 영화는 그런 그녀의 죽음을 알리며 시작한다. 그 소식을 전하러 온 북쪽의 착한 마녀 글린다는 시민들의 환대를 받고, 먼치킨 랜드는 안도감과 해방감으로 축제분위기다. 그때 시민들 사이에서 한 소녀가 묻는다. “글린다, 엘파바와 정말 잘 아나요?” 순간, 시민들은 조용해지고 글린다는 머뭇거린다. 화면은 엘파바의 어린 시절 속으로, 그리고 마녀로 불리기까지의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엘파바는 먼치킨랜드 영주의 딸로 태어나지만, 초록색 피부를 가졌다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아버지에게조차 버림을 받는다. 곰 유모의 사랑과 지극한 돌봄으로 유년시절을 보내지만,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조롱과 멸시, 따돌림, 혐오, 배제의 명분이 되는 잘못된 세상에서는 자신의 본성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웃사이더로 살게 되기 쉽지만, 엘파바는 전혀 위축되지 않는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거침없이 말하고, 모두가 ‘Yes!'라 할 때조차도 자신이 납득할 수 없고 동의할 수 없는 것에는 서슴없이 ‘No!’라고 말하는 용기 있고 올곧은 여성이었다. 이 올곧음이, 또 피부색이 다른 여성이어서 겪은 세상의 외면과 혐오로 인해 오히려 목소리가 작다 못해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이들의 말에 귀기우리고 공감하는 감수성이 발달하게 되었고, 그래서 이들의 고통을 그냥 지나쳐버릴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 여성이 사악한 마녀로, 공공의 적이 되어 쫓기다 사라진 것이다.

누가, 왜, 그녀를 사악한 마녀라 낙인을 찍었을까?
<위키드>의 배경이 되는 20세기 초는, 지금도 그다지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동서양을 불문하고 다른 피부색에 대한 혐오가 극심하던 때였다. 엘파바의 초록색 피부는 어디서도 환대받지 못했고, 혐오와 차별이 늘 함께했다. 여기에 순종과 조신함을 여성의 최고의 미덕으로 여겨 여성의 당당함과 거침없음, 나섬을 눈에 가시로, 걸림돌로 여기고 되바라졌다 혐오하던 시대다. 엘파바는 이런 시대에, 또 편견과 차별에 틀렸다, 불평등하다 거침없이 말하며 불복종으로 맞서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이런 엘파바이기에 세상은, 특히 에메랄드시티에서 최고 권력을 가진 마법사에게는 자신의 편이 되지 않는 한, 자신을 위협하는 걸림돌이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엘파바가 가진 마법능력은 마법사 뜻대로 조정되지 않으면 기필코 없애야 하는 위험한 것이리라. 마법사와 마담 모리블은 그녀에게 소수가 아닌 다수, 아웃사이더가 아닌 인사이더로 살게 해 줄 테니 그 능력을 자신들을 위해 쓰라고 회유한다. 절대로 받아들일 리 없는 엘파바는 한순간에 사악한 존재, 마녀의 낙인이 찍혀 공공의 적으로 몰리게 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녀로 불리던 여성들은 엘파바처럼 남성들에 비해 똑똑하고 능력이 있거나, 동네에서 약초를 조금 더 잘 다루던 여성일 뿐이었다. 약자의 고통을 그냥 지나치지 못해 편을 들어주거나 그저 달라서 박해받는 여성들이었다. 마녀 여론몰이가 남성중심의 사회가, 남성우월의 권력욕과 지배욕을 취하려 작동시킨 여성 탄압인 이유다. 마녀의 역사를 그래서 마녀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여성 수난사라 보는 것이다.

사라지고 말을 잃은 동물들


엘파바가 다니는 쉬즈대학교에서 강의하던 동물 교수진 중 유일하게 남은 교수 딜라몬드(염소)는 동물과 인간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연구하고 차별사례들을 수집하는 등 동물권과 정부의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동물 탄압을 알리는 지하조직을 만들어 활동하는 레지스탕스다. 그런 그가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강의 도중 정부에서 나온 사람들에게 잡혀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끌려나간다(원작소설에서는 결국 잔혹하게 살해된 채 발견된다). 딜라몬드 교수처럼 정부나 마법사에게 옳지 않다고 목소리를 내고 말을 잃지 않으려고 저항하는 동물들이 반역자로 몰려 잡혀가 굴복하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는 일들이 반복되면서 동물들 스스로 오즈를 떠나거나 목소리를 낼 의미를 잃고 침묵하다가 급기야 말하는 능력까지 잃는다.

이처럼 오즈에서는 언젠가부터 정부의 동물 탄압에 대해 비판하는 동물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거나 직장에서 해고통지를 받고, 갑자기 강의가 없어지는 등 일터를 잃는 일들이 일어난다. 그저 사는데 급급한 동물들까지도 잡아들여 우리에 가두는 일들도 암암리에 벌어진다. 마법사는 이렇게 동물들을 사회구성원에서 배제시키고 동물과 시민을 분리시키는 등의 정책을 펼쳐왔던 것이다. 우리에 갇힌 동물들은 자유를 빼앗긴 생명들이 그러하듯, 처음에는 반항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무기력해져 싸울 힘과 의미를 잃어간다. 인간의 감시를 받으며 자라면 자고 일하라면 일하고 주는 대로 먹는 하루하루에 익숙해져 간다.

그 사이, 오즈 민들은 그 옛날 고차방정식을 풀고 철학을 논하며 함께 공부하던 표범과 흑염소와 같은 동물친구들을, 또 함께 일하던 동물동료들을 잃었고 잊게 되었다. 이제 오즈는 더 이상 인간과 동물이 친구나 동료가 될 수 없고, 동물들은 인간을 위해 일을 하고 먹이가 되며 인간을 즐겁게 해야 하는 존재로서의 삶을 동물의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당연시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리머리(주술서)조차 읽어낼 수 없는 마법사가 마법을 행했을 리는 없고, 오로지 그의 독재와 폭력, 동물차별정책 등 야만적인 통치로 동물의 사회적 위치를 인간 아래로 강등시켜 노예로 삼고 눈, 귀, 입을 막은 것이다. 이 서사에서 정책지향점을 시설중심에 두고 사회활동에서 분리와 배제에 초점을 두는 장애인이나 소수자 정책에 의한 차별 현실과 그 안의 갇힌 생명들(사람, 동물 등)의 현재가 겹쳐 보인 것은 비단 나뿐일까?

“휠체어 위에 있는 내가 불쌍해 보였겠지.”


이 말을 누가 했을까? 동쪽마녀 네사로즈였다. 엘파바의 동생 네사로즈는 휠체어를 탄 장애여성이다. 자신을 낳다가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이 마음 한 편에 자리하고 있고, 이 대사에서 느껴지듯 자신의 장애를 가엾게, 불행하게 보는 세상과 남들의 시선에서 아주 자유로울 수 없는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매사에 의기소침하고 조심스러우며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 독립하고 싶다 말은 하지만, 정작 의지는 약하고 보호받음에 오히려 안도한다.


네사로즈는 숨겨진 존재였던 엘파바와는 달리 아버지의 사랑과 후광을 한 몸에 받으며 자라서 자존감과 자신감은 글린다를 능가할 만한데, 자신이 가진 장애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언니 엘파바가 가진 다름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낸다. 일례로 엘파바가 글린다가 골탕 먹이려고 준 모자를 쓰고 무도회에 당당히 등장하는데 네사로즈는 창피함을 감추지 못한다.  친구들의 조롱과 혐오, 무시의 시선 속에서 홀로 춤을 추는 언니와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시선을 피하며 친구들 사이로 숨어버리기까지 한다.

이 영화는 다름을 가진 여성 엘파바, 동물 딜라몬드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세상의 냉대와 차별 앞에서 무기력과 자기 연민으로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모습을 보이던 기존 캐릭터의 정형성을 파괴한다. 그리곤 그들이 마녀로, 반역자로 낙인이 찍혀 공공의 적으로 몰리면서까지 지키고 싶었고 마법사가 탐했던 것을 비춘다. 그러나 같은 여성이면서 장애라는 또 다른 정체성을 가진 네사로즈는 보호와 연민을 자극하고 수동적 태도를 가진 장애캐릭터의 정형성을 고수한다. 무엇을 비추려는 것일까? 두 가지로 유추된다. 하나는 (주인공과 조연의 역할적 한계도 있고) 제작진의 인식이 장애에만 초점을 맞춘 원작의 인식과 다르지 않다는 것일 수 있고, 또 하나는 동물들이 점점 스스로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하고 무능한 존재, 불쌍하고 가엾은 존재로 여기게 되고, 급기야 인간을 위해 죽어가는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서사에서 말해주듯, 그 사회가 추구하고 지향하는 가치에 의한 인식의 지배, 즉 다름과 다양성을 배척하고 탄압하는 사회가 그 당사자의 인식마저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비추려는 것일 수 있다.

나는 <위키드2>에서 네사로즈가 진실과 정의를 향한 신념, 그리고 높은 자존감을 드러내는 반전의 모습을 기대한다. 만약 그것이 어렵다면, 적어도 원작 소설과는 달리 그녀의 결말이 ‘인식의 사회적 지배’를 드러내는 서사의 중심이 되기를 바란다. 이러한 기대는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 즉 소수성과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가 한 개인과 집단을 어떻게 파괴하고 소멸시키는지, 또 그로 인해 당사자가 스스로를 어떤 존재로 인식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리라는 믿음에 있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Wicked(사악함)’은 소수자나 약자가 아니라, 권력을 가진 다수와 강자에게 향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P.S.


- <위키드 2>에서는 무도회에서 ‘보크’와 춤을 추던 ‘네사로즈’의 춤사위에서 느껴졌던 에너지와 밝음이 캐릭터의 의식과 태도에서도 발현되길 기대해 본다.

- ‘네사로즈’를 연기한 배우 ‘마리사 보디(Marissa Bode)’는 실제로 휠체어를 탄 장애여성이다. 그녀의 리얼한 움직임과 동선은 캐릭터의 몰입도뿐만 아니라, 감정선의 개연성을 높였다. 특히 무도회에서 보크와 춤을 추는 네사로즈의 춤사위는 왜 장애캐릭터를 장애배우가 연기해야 하는지를 피부에 와닿게 한 명장면으로 남았다.

글 백수정 대중문화비평 활동가